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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방송 녹취록 - 소속: [알 수 없는 함선]
감청 시각: 43시간 전
게시일 2023-08-24 18:05:00

Nora Night Nora Night

무단 방송 녹취록
통신 발신원: [데이터 손상됨]
감청 시각 - 43시간 전


> 방송 로그 녹취록 기록 시각: [데이터 손상됨]
> 감청 대상 우주 함선의 등록자: [어딜 들춰보시나, 친구]
> 일련 등록 번호: [데이터 손-신경 꺼라 젠장-상됨]
> 문자화 기록 시작:

노라: “길고 조용한 밤이에요, 꿈꾸는 여러분. 타이트 빔에는 이윤쟁이 날강도들 프로파간다랑, 드라크 진드기국 요리법 교환하는 그리니어들 말곤 아무것도 없네요. 그러니까 기회가 있을 때 숨 좀 돌리세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 하, 집어치우라죠. 여자가 돼서 가끔 판을 뒤흔들어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만, 들어오는 통신을 수신하도록 하죠. 그러니까 얘기해 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속 소리를 들어보자구요. 그리고 저를 추적해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길. 아마 생각 끝나기도 전에 전 이미 온데간데없을걸요? 노라가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가만히 앉아 있는 거죠. 좋아요, 통신 연결 열렸습니다. 후회하지 않게 해 주세요.

첫 번째 발신자분은… 어라, 뭔가 이상한데."

발신자: "여보세요? 아 음... 이거, 작동 중인 게 맞겠지?"

노라: “똑같은 질문을 돌려드릴 수도 있겠는데요. 그쪽은 데이모스에서 걸고 계신 거 맞죠? 하늘에 떠 있는 달들 중에서도 절대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동네란 건, 빌어먹도록 확실한 사실이죠. 거기서 살림을 차릴 정도의 멍청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뭐 얼굴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죠."

발신자: “아, 잘 연결됐군! 그리고 그래. 음...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이 동네 출신인 건 아니네. 실은 말이지, 자네가 말한 대로 '살림을 차리자'면, 안전하고 근사한 코퍼스 스탠치온 함이겠지, 이 쉭쉭거리는 구멍이 뱉어낸 찌꺼기가 무릎까지 차는 이딴 동넨 아니란…”

노라: “코퍼스? 당신 코퍼스에요? 젠장, 역시 하는 게 아니었어. 노라 아웃."

발신자: “아니, 잠깐, 잠깐만! 나는… 내 이름은 라트록스라 하네. 라트록스 운.”

노라: “좋아요. 1분만 시간을 주죠. 어째 겁먹은 목소리네요, 라트록스 운. 근데 그 이름, 좀 너무 길어요. 친구들은 당신을 뭐라고 부르죠?”

발신자: “친구? 아니, 친구 같은 건 딱히... 아마 한때는, 연구 파트너 같은 사람이 있었지. 세 번이나 연속으로 교대 근무를 같이 한 적도 있어.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거든. 그 여자는, 엄, 어느샌가 날 '록시'라고 부르곤 했었지. 그거면 되나?”

노라: “누구나 어떤 사람에겐 어떤 존재가 되곤 하는 거예요, 록시. 심지어는 이윤쟁이 날강도들이라도 말이죠. 아무래도 요즘은 그런 사람 사이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지만요. 나르메르는 사람들 이름이랑 얼굴을 빼앗아다가 놋쇠 판처럼 납작하게 갈아내고 있고. 어떤 그리니어는 솔라리스랑 한솥밥을 먹고 있고. 어떤 코퍼스 은둔자는 나처럼 이상한 여자랑 대화를 트고 있고. 격변의 시대에요, 아주.”

발신자: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런 건 잘 모르네. 밖에 잘 안 나가거든. 아니 못 나가는 게 맞겠지. 잘이 아니라 전혀고, 사실은. 무슨 장기 계약 같은 걸 좀 맺은 상태라 말이야. 정말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참... 끔찍할 정도로 지루한 일상이라네. 뭐가 나를 먹어버리려고 할 땐 빼고 말이야. 혹은 흡수하려고 한다던가. 아님 둘 다라던가.”

노라: “오, 분명 할 얘기가 제법 있으실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 성계에서 제일 성난 개미집, 그것도 제일 지독한 데서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 같은 얘기요.”

발신자: “어험! 음, 어, 그래, 근데 안 되네. 아니 내 말은, 안타깝지만 자세히 얘기할 입장이 안 된다는 얘기지. 현 고용주…와의 기밀 유지 계약이라던가… 뭐 그런 것 말이네.”

노라: “통신 너머 숙녀분한테 얘깃거리 좀 줘 보지 그래요, 록시. 아님 당신이 뭔가 사악한 목적으로 통신을 붙잡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구요. 제 위치를 특정해 캐내려는 게 아니면, 애초부터 왜 통신을 한 건데요?”

발신자: "에휴... 그래, 당연히 그렇게 되겠군. 공평한 거래가 돼야지. 자네의 시간은 귀중하니, 나도 그만큼 상응하는 뭔가를 제공하지 않으면…”

노라: “록시…”

발신자: “데이모스. 평상시엔 굉장히 따분한 곳이지. 안 그렇나? 나는 테스트에 쓰는 샘플을 — 그러니까 인페스티드의 샘플을 — 수집하는 일을 한다네. 보통은 데이모스에 생태계 따윈 있을 리가 없다고들 분명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생태계가 존재하지. 인페스티드 장기 기관들의 항상성은 그야 물론, 꽤 인정사정없지만, 동시에 놀랍도록 연약하다네. 그래서 내 일은 거길 들어가서, 낭종 몇 개 잘라내고, 이 위대하고도 끔찍한 균형을 저해하는 요소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머지 조직이 운동 기능을 회복하기 전에 죄다 소각하고, 신나게 비명을 질러댄 다음 숨 한 번 돌리고, 빠져나오는 게야. 뭐 간단한 일이지.

아… 그, 아직 듣고 있나?”

노라: “계속 얘기하세요.”

발신자: “보통은 그게 가장 고생하는 부분이라네. 이러고 사는 데에도 이제 차츰 익숙해졌어. 볼 수 있는 공포라면 어떻게든 감당이 되는 법이라네. 비명 지르는 것도 도움이 되지, 물론. 아주 강렬한 카타르시스야.

그게, 이게 다 기록이니 말이네. 데이모스의 기록들. 웃자란 생체들이나, 고름집, 혈종 같은 것들. 이 흉물스럽고 축축한 땅의 노래인 셈이지.

그게 요즘 바뀌었단 말이야.”

노라: “‘바뀌었다'고요.”

발신자: “미안하네, 아가씨. 너무 오래 혼자 지냈던 늙은이의 넋두리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노라: “듣고 있어요, 록시. 다 괜찮아요. 계속 얘기해줘요.

… 록시?"

발신자: “그... 그래! 미안하네... 잠시 생각을 좀... 이걸 지금 자네에게 이야기해도 되는 건지조차 확신이 안 서서 말이네. 사실 전부 인페스티드의 수작 같은 거라면 어찌한단 말인가? 하지만, 만약 진짜라면, 누군가는 알아야만 하겠지. 자네에게는 이야기를 해 둬야겠네.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노라: “록시…무슨 경우 말이에요?”

발신자: “무엇인지 — 누구인지 몰라도 인페스티드가 아주, 아주, 아주 두려워하는 것 같은 존재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경우를 위해서 말이네.”

노라: “잠깐만요. 인페스티드가 두려워해요? 그것들이 그리 말하던가요?”

발신자: “아니 아니 아니. 뭐, 적어도 말로 한 건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일 테니 말일세. 아니야. 외분비액이네.”

노라: “그래요, 외…”

발신자: “외분비액, 그래. 그게… 눈치를 보는 것처럼 움직인단 말일세. 모세혈관들은, 점점 더 빠르게 혈액을 순환시키고 말이야. 다발버섯형 궤양이 올해 이맘쯤이면 피어야 하는데, 이것들도 약해진 상태야. 색도 퇴색됐고. 아무래도... 아무래도 이것들이 숨으려는 것 같단 말이네. 눈에 안 띄게 말이야.”

노라: “그리고 그게… 안 좋은 거라구요.”

발신자: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

노라: “혹은 그 추악한 내장 세상에 대해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아는 것뿐이거나요.”

발신자: “하. 그래. 그럴지도.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아마. 휴... 뭔가 변했단 얘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것도 그 자체로 좋은 것 같군. 아마… 별것 아닐 게야, 그렇겠지?”

노라: “그냥 행성에 연간 건강검진이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르죠. 자, 밖에 나가서! 달리기 좀 하고! 탄수화물은 적당히! 뭐 그런 거려나.”

발신자: “하하하… 그래, 그럴지도. 뭐… 고맙네. 이 늙은이를 웃겨 줘서. 짐작이야 가겠지만, 아무래도 잡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라서 말이네. 이 아래서, 혼자 있다 보면. 여기 돌아가는 연동 운동이나, 트림 배출, 뭐 그런 걸 보다 보면 말이야.”

노라: “괜찮아요, 록시. 조심히 지내구요.”

발신자: “하지만 제일 신경 쓰이는 건, 그 노크 소리란 말이네."”

노라: “뭐라구요?”

발신자: “끊임없이 들리는 노크 소리 말일세. 멈추질 않아! 어쨌든, 분명 나보다 더 흥미로운 상대가 자네 회선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노라: “무슨 노크 소리 말이에요, 록시?”

발신자: “뭐어... 사람이 하루라도 제대로 된 밤잠을 못 자게 만드는 그런 소리 말일세. 지금 생각해 보니, 만난 적도 없는 여자랑 타이트 빔 통신을 해 볼까 하는 환상이 든 것도 그것 때문이겠구먼...”

노라: “그러니까 꿈속에서 그 소리를 듣는다고요?”

발신자: “어…아마... 꿈에서 들은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대체-”

노라: “어떤 소리예요?”

발신자: “뭐라고?”

노라: “그 노크 소리요, 라트록스. 어떤 소리가 나는데요?”

발신자: “그러니까… 똑똑 두드리는 소리. 오래된 파이프를. 리잘 두더지 여러마리가 세게 치고 있는 것 같은. 뭐 그런 소리네.”

노라: “그 소리 리듬은 어떤데요? 박자 같은 게 있어요?”

발신자: “어 음, 리듬? 아니, 그게 - 뭐, 그게 이렇게쯤 들렸던 것 같은데… 하나-둘-셋. 하나-둘-셋. 우리 옛날 보급관이 연주하던 오로킨 왈츠처럼 말이네. 호… 혹시 내가 뭐 말을 잘못했나?”

노라: “그 데이터 보내봐요, 록시. 전부 다.”


[통신 종료]